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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의 따뜻함을 토대로 끊임없이 변화를 주고 있다”

흙내가마 박재국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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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경 기자
기사입력 2020-10-15

박재국 작가는 조선 청화 백자를 지금 시대와 우리 정서에 맞는 작업을 하고 있고 특히 자연을 간결하고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박 작가를 만나 끊임없는 창작활동에 대한 고민과 현시대 도자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박재국 작가가 흙의 따뜻함에 대한 설명과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창조해내는 창작활동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 김영경 기자


도자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고향이 속리산 자락인 보은군 백석리인데, 흰색돌이 많다고 해서 백석리였다. 흰색의 돌뿐만 아니라 백토(흰색 흙)가 많이 나왔다. 가마터였던 곳으로 보이는 논, 밭 등에서 신기한 모양의 사금파리(도자기 파편)가 많이 나와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있다. 백토를 가지고 작은 그릇과 주병을 만들기도 했다. 회화를 전공하려고 준비하던 중 보은성당 신부님을 통해 여주 성월요 업을 소개받았던 것이 도자기의 시작이었다. 처음 여주에 가게 되었을 때의 흥분을 잊을 수가 없다. 군대 갔다 오고 나서 본격적으로 도자기 만드는 일을 하게 되었다. 
 
 
작가의 초창기 도자기 작품과 현재 만들고 있는 도자기의 차이가 있다면?
 
초기에는 색을 화려하게 썼다. 회화를 공부하면서 익숙했던 다양한 색감을 도자기에 접목했고 많은 도자 작품들을 눈여겨 보며 ‘나다운 도자기’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초창기에는 도자 기술을 배워가며 감동을 주는 다양한 작품들에서 영감에 얻었고 순간순간의 영감을 스케치와 연습을 하면서 새로운 작업을 시도했다. 끊임없는 실험의 연속이었고 반복된 작업 속에서 마음이 가는 것을 결정해 나갔다. 초창기의 도자기 작품은 색분청으로 과감한 색의 시도로 이어졌고 생활자기에서는 문양과 색감을 단순화하여 서정적으로 표현했다. 흙이 주는 따뜻함을 토대로 끊임없이 변화를 주는 작업의 연속이었다. 최근에는 표현에 있어 흙의 본질인 자연스러움을 살리고 색채를 최대한 절제하여 단순화된 덩어리감과 선으로 깊이를 추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박작가에게 ‘흙그림’이란 무엇인가?
 
도자와 회화를 접목하여 회화성을 지향하다 보니 ‘색분청’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흙과 나만의 감성이 만나 형상을 만들고 불에 구워내면 뭐라 말할 수 없는 신비로운 색과 변화를 본다 .나는 여기에서 오는 또 다른 회화성을 맛보았다. 어느 누가 만지든 그 사람의 생각에 따라 변하고 마음까지 받아 담을 수 있고 표현되는 흙의 만남은 나를 더욱더 작업에 흥미와 호기심으로 이끌었다. 지금까지 해 온 실험적인 다양한 작업의 결과물과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나만의 용어가 필요했다. 그래서 흙처럼 자유롭고 끝없는 변화가 가능한, 표현의 장점이 너무 많은 흙의 무한한 힘을 빌어 창작의 큰 틀에서 ‘흙그림’이라 쓰게 되었다.
 
 
옛날 사금파리를 활용해 준비하는 작업이 있다고 들었다.
 
옛 가마터 등 현장에서 발견한 사금파리는 옛 도공들이 다뤘던 색감, 도자기의 형태, 곡선의 흐름 등을 추론할 수 있는 중요한 학습 자료다. 비슷한 시기의 작품인데 어떤 작품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다른 파편들은 외면당하는 현실에 의문이 생겼다. 어두운 땅 속에 있던 파편들을 꺼내서 파편에서 나오는 빛을 보고 도자기의 영원함을 보았다. 빛이 살아 있는 파편을 보면서 수백년 동안 품고 있었을 정신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작품으로 살려보고 싶었다. 해외문화를 복사해서 빠르게 쓰고 버리는 문화가 있는데 우리 문화를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살려보려는 애정이나 노력은 부족하지 않나? 나는 사금파리를 통해 우리 문화의 정신을 구현해 보고 싶었다. 금이 가거나 휘거나 발색이 좋지 않아 버려진 도자기이지만 자연의 결정체이자 민족의 삶과 정신을 품고 있는 사금파리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고 싶었다. 


▲ 작업장에서 만난 박재국 작가. 초벌구이 작품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 김영경 기자
 

물고기와 연꽃 문양으로 유명한 생활자기는 어떤 특징이 있나?
 
우리민족은 자연을 보고 수용하는 자세가 남달랐다. 돌, 식물들에게서도 내면의 생명을 읽어내려고 했다. 고려시대 청자 문양들의 표현 형식을 보면 매우 함축적인데 단순하면서 추상적인 형식을 따왔다고 본다. 연장선상에서 조선시대 청화백자를 재해석해 서정적이면서도 담백한 한국적인 정서를 담으려고 노력 했다. 이런 정적이고 자연스러운 도자기의 형식이 생활 자기에서 구현되어 소비자가 사용하면서 따뜻한 위안과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도자기의 위상은 어떻게 정립되어야 된다고 보나?
 
우리나라 유물에서 도자기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토기에서 시작해 조선백자에 이르기까지 용기의 역사가 잘 정리되어 있다. 건축이나 그림 등 많은 문화들은 소멸되었지만 살아남은 도자기가 문화의 교과서 역할을 한다고 본다. 그 시대별 삶이 도자기에 녹아 있다고 본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분단시대를 겪으며 전통 방식의 단절이라는 위기도 있었지만 청자, 백자, 분청 등 전통방식이 거의 복원되었고 생산 시스템도 다양하게 구축되어 있다. 다만, 우리 문화를 대중들이 제대로 들여다 볼 시간을 갖지 못했다고 본다. 어렵게 복원되고 축적된 역량에 대한 재정비가 필요 하다. 전 세계에 알려지지 않은 우리 도자기의 다양한 기법들이 있다. 근대에 일본과 중국 도자기는 유럽과의 교류를 통해 많이 알려졌지만 우리는 그런 교류가 적어 오히려 우리만의 기법과 독자적인 방식이 생겼다고 본다. 이제 전통방식 복원과 독자적인 도자기 문화에 대한 평가가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생활자기를 돌아보면 고급식기는 유럽산이 각광받고 일반식기는 멜라민 식기에 잠식되어 있다. 도자기 문화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된다면 품질면에서 떨어지지 않고 친환경적인 도자기가 주목받을 것이다.

 
여주 도예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이라 보는가?
 
중암리 가마터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세종실록지리지’에 하나 있던 도기소가 여주 관청 북쪽 관산에 있다는 기록, ‘동국여지승람’에도 도자기가 여주 특산품으로 적시되어 있을 만큼 여주도자기의 뿌리가 깊다. 강진의 고려 상감청자, 계룡산 학봉리 철화 분청사기, 무안 분청, 광주 분원요, 여주 중암리 백자, 해주 백자 등이 옛 가마터로 유명한 곳으로 꼽힐 만큼 여주 도자기의 우수성은 알려져 있는데 이런 자부심을 승화시키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천이 여주에 비해 터전이 빈약하고 도자기에 대한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급성장한 것은 분야와 표현방식이 다르지만 끝까지 완성도 있게 만들어내는 의지가 한몫했다. 청자를 비롯한 많은 전통방식을 복원하고 다듬어가고 가는 모습을 보면 도자인들과 문화를 만들어가는 단체의 연계가 잘 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주는 도자기를 생산하는 전문 기술자가 많고 공방과 공장이 많아 생산과 시설이 갖쳐져 있다. 이제 양적인 성장에서 질적인 성장으로 가야될 국면이다. 도자기 생산국에서 수입국으로 전락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해외시장을 두드릴 필요가 있다. 한국도자기의 세계화를 위한 작업으로 각 나라의 음식 문화를 파악하고 그릇의 체계적인 디자인화도 필요하다고 본다. 여주 근대 도자사를 보여줄 자료관을 시작으로 도자기 조형물을 활용해 아름다운 여강과 어우러지는 볼거리를 만드는 작업부터 해야 되지 않을까? 도자기 강대국의 후손답게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로 문화와 관련된 사람들의 연대도 시도해야 된다.

▲사금파리 조각을 모아 씨앗을 표현한 작품. 박 작가는 이 작품이 희망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 김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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