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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여행 91 - 효심을 잊은 자가 어찌 법을 안다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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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균
기사입력 2020-10-15

▲ 세종신문 김태균 대표     
지난번 세종시대에 단 한 번 나오는 잔혹한 형벌인 거열형 또는 환형에 대한 실록여행을 했다. 임군례란 용렬한 인물이 한줌의 권세를 믿고 나대다가 극형에 처해진 사례다. 아마도 태종의 서슬퍼럼이 아직 살아있기에 이런 형이 내려졌을 것이다.

이 임군례 사건의 동조범이 있는데 그가 정안지란 인물이다. 그는 과거에 급제한 인물인데 일찍부터 명예가 있었다고 기록한다. 전에 서장관(書狀官)으로 재상 이지숭과 윤목을 따라 북경에 갔었다. 그 때 윤목이  부도한 말을 한 일이 있는데 그게 발각이 되었다. 그때 정안지가 숨겼다하여 사형을 논하다가 사면하고 폐기했는데 이번에 임군례 건으로 된통 걸린 것이다. 실록은 다음과 같이 전한다.
 
정안지를 참형에 처하고, 가산을 적몰하고, 처자는 노비로 삼았다. 나머지 연좌자(緣坐者)는 모두 용서하였다. 안지가 임군례와 대변할 적에, 군례가 말하지 아니한 말을 거짓말로 얽어 말하기를,
“상왕이 후궁을 위하여 동서에 이궁을 두어 자주 놀러 거둥하고, 또 그 족친(族親)들은 모두 현직(顯職)에 임명하나, 공신의 아들은 경하게 여겨, 오히려 행직(行職)에 제수하였다.”
하여, 억설로 임금을 무함하고 훼방하였으니, 죄가 사형에 해당하나, 상왕이 안지가 자수하였다 하여 용서하려 하니, 병조·대언사에서 청하여 말하기를,
“안지가 군례의 대역죄에 해당한 언설을 듣고서도 감추고 발설하지 아니하였다가, 여러 달이 되어서야 겨우 다투고 힐문하게 되니까, 비로소 말하였으니, 어찌 자수한 데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상왕이 말하기를,
“공의(公議)에 붙이는 것이 가하다.”
하니, 임금이 정초에게 명하여 정부와 육조에 의논하게 하니, 모두 말하기를,
“죽이는 것이 가하다.” 하므로, 그대로 따랐다.(3년 2월 22일)
 
그런데 이런 사건은 단순하게 당사자만 처벌되고 끝나지 않는다. 신하들은 충성맹세를 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이 임금에게 반역했던 사람들을 이리저리 찾아서 다 얽어넣고 정리해버리는 것이다. 20여일 지나 사헌부집의 심도원이 상소를 올린다.
 
“난신(亂臣) 임군례(任君禮)·정안지(鄭安止)의 연좌인을 모두 처벌해야 합니다.”
 
그 시간동안 관련인물들, 특히 가족들과 친척 친구들 여러 종류로 줄을 대고 있던 사람들은 노심초사하며 끙끙 앓고 있었을 것이다. 위와 같은 상소를 받아 든 임금, 세종은 소를 올린 도원과 대화를 한다. 
 
임금이 말하기를,
“담당관의 법을 집행하는 취지로서는 당연한 일이나, 그러나 내가 이미 상왕께 여쭈었으므로, 상왕께서 재량하여 처리하실 것이니, 너희들이 굳이 청할 것이 없다. 또 과거에는 비록 난신에 연좌된 자가 있다 할지라도 문제를 삼지 않더니, 하필이면 지금에 이 사람들만 가지고 죄를 주자고 주장하느냐.”
하니, 도원이 아뢰기를,
“군례의 아들 임맹손(任孟孫)은 다른 연좌인과 같이 볼 수가 없습니다. 그의 아비가 난언(亂言)을 할 때에 옷을 잡아 당기며 말렸은즉, 이것은 함께 참여하여 들은 것이오니 용서해서는 안됩니다.”
하였다. 임금은 말하기를,
“너의 말이 잘못이다. 임금과 신하와의 의리가 비록 중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의 은의도 또한 큰 것이다. 어찌 군신의 의로 부자의 은혜를 없앨 수 있겠느냐. 맹손이 그 아버지의 옷을 잡아당기며 반란에 속한 말을 못하게 한 것은 곧 군례에게 효자 노릇한 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어찌 반란에 참가했다는 죄를 씌울 수가 있느냐.”
하였다. 도원이 나간 뒤에, 임금이 말하기를,
“도원은 법을 담당한 관리로서, 다만 맹손이 그 말을 들은 것을 가지고 죄가 있다는 것만 알고, 맹손이 아비를 사랑하는 효심은 잊어버렸으니, 어찌 법을 안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하였다.(3년 3월 15일)
 
세종은 3가지를 지목한다. 연좌의 죄를 묻게 되는 일관성, 부자지간의 의와 군신간의 의에 대한 이해 그리고 법을 집행하는 관리의 법윤리에 대한 문제다. 과거에는 비록 난신(역신)에 관한 문제가 있더라도 연좌를 논하지 않더니 왜 하필 지금 논하는가에 대한 문제인데 상소하는 도원은 말리긴 했지만 함께 들었는데 그것을 고발하지 않은 죄가 있다는 논리를 편다. 세종이 딱 잘라 '네 말이 잘못이다‘고 말한다. 군신의 의도 중한 것이지만 부자간의 의도 중한 것인데 그것을 억지로 엮어서는 안된다는 논리다. 여기서 세종은 한가지 더 나간다. 법을 담당하는 관리로서 죄만 가지고 논하려고 하는데 그 속에 아비를 사랑하는 효심을 잊었다면 그것은 법을 안다고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아마도 이 말은 비서실직원들과 사관들이 들었을 것이다. 세종의 법집행의 원칙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효로서 정치를 일으켜야 한다는 말이나 효심을 잊은 건조한 법집행은 법의 본래 취지가 아니라는 인식을 보여준다.  아마도 이러한 인간본위의 인식이 세종의 세종다움을 이어가게 한 힘이 아닐까 싶다.

요즘 의료계의 파업과 의사고시를 거부한 의대생들에게 기회를 줘야 하는가에 대한 찬반 여론이 있다. 당시에도 의사들의 문제가 기록되어 있다. 
 
“의학을 공부하는 자들이 다만 방문(方文) 책만 읽고 시험을 치러서 진급하는 데만 힘을 쓰고, 병을 고치는 데에는 마음을 쓰지 아니하니, 지금부터는 치료의 다소를 함께 참작하여 채용하게 하소서.”(3월 18일)
 
병을 고치려고 의사가 되었는데 진급하고 명예와 권력을 취하려고 공부하고 애쓰는 장면을 꼬집은 것이다. 최근의 의료파업과 맥이 통하는 장면인데 어느 세상에나 이런 일은 있게 마련이다. 본질에 충실하다는 것은 그만큼 헌신과 직업의식이 분명해야 함을 나타낸다고 보인다.
또 하나 중요한 기사가 나온다. 조선왕조실록은 세계 문화유산 기록물에 등재되어 있다. 수많은 전화를 거치면서 현재 이런 기록으로 과거를 볼 수 있게 만든 것은 태백산사고에 살아남은 실록 덕분이다. 3월 23일에 이러한 건의와 조치가 나온다. 
 
“고려로부터 모든 문서는 다만 원본만을 간수하고 있는데, 만일 수재나 화재가 있을 경우에는 다시 상고할 길이 없으니, 바라옵건대, 이를 베껴서 여러 사원(史院)에 간직하게 하소서.”
하였다. 마침내 중앙과 지방에 있는 사고(史庫)에 이를 간직하게 하였다.(3월 23일)
 
원본만을 간수하는 것은 만일을 대비하는 자세가 아니니 사본을 만들어서 여러 사원에 나누어 간직하게 하자는 의견이었고 이를 받아들인 세종은 각종 중요 문서들을 중앙과 지방에 있는 사고에 배치하게 했다. 실록도 이런 기준에 따라 전국 4곳의 사고에 배치했기에 이런 사실들을 알게 된 것이다. 

현실에 충실하고 미래에 있을 문제에 대비하자는 사소한 의논이 수백년을 건너뛰어 고마운 일이 된다. 당시 이를 상고한 승문원제조의 혜안은 수백년을 대비하는 역사적 혜안이었다.

세종신문 대표 김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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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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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좀 20/10/23 [15:12]
이번 의료 파업의 경우는 전문가인 의사와는 한마디 상의 없이 무리한 의료정책을 시행한 것에 대해 의사들의 정당한 항의입니다. 여기에 직업의식이 왜 나오나요. 주 80시간 이상을 환자들에게 헌신하는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희생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헌신과 직업의식을 운운하다니요. 이런 사안에 대해서는 좀 더 주밀하게 살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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