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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우리말’ 바로 알기] 우리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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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사입력 2020-10-15

▲ 김나영 중원대학교 주임강사     
여주시 출신의 문인(文人) 광파(光波, 별명)가 친구와 놀다가 아내와 전화통화를 하게 되었다. 광파는 아내와 전화를 끊고 친구에게 “우리 마누라가 말이야…….”하면서 통화하게 된 이유를 말했다. 그런데 ‘종료버튼’을 누르지 않은 채로 말해서 아내가 듣게 되었다. 아내는 집에 귀가한 광파에게 ‘왜 친구에게 나를 마누라라고 부르냐’며 화를 냈다고 한다. 그 뒤로 광파는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도 ‘마누라’라는 말을 쓸 때 멋쩍어 한다.
 
현대 국어의 ‘마누라’는 두 가지 뜻을 지닌다. 하나는 ‘중년이 넘은 아내를 허물없이 이르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중년이 넘은 여자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광파의 아내는 이 두 번째 의미로 해석한 것이고, 아마 대부분의 현대 아내들은 그리 이해할 것이라 사료된다. 심지어 어떤 이는 ‘마누라’를 얼마나 하대(下待)했으면 ‘낮잡아 이르는 말’인 접미사 ‘-쟁이’까지 붙여 ‘마누라쟁이’라고 쓰기도 한다. 이런 ‘마누라’가 15세기(중세국어)에는 높임의 표현이었다. 


중세국어의 ‘마노라’는 상전, 마님, 임금 등을 이르는 말로 남녀 모두에게 사용되는 윗사람에 대한 존칭의 표현이었다. 이후 근대국어 시기에 신분이 높은 여성에 대한 존칭으로 그 의미가 축소되었다. 그것이 이제는 자신의 부인이나 중년 여성을 낮춰 부르는 의미로 변화하였다.
고유어 ‘마누라’는 18세기에 한자의 영향을 받아 ‘말누하(한자어 ‘枺樓下’의 한글 표기)’로 바뀌었기도 했는데, 혹자들은 이것을 근거로 ‘마노라’ 또는 ‘마누라’가 한자어에서 기원한 것으로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15~19세기의 문헌에 ‘마노라’가 나오므로 ‘말누하’는 단순히 한자의 음(音)을 빌려 쓴 차자(借字)표기이다. ‘마노라’의 ‘ㅗ’가 ‘ㅜ’로(모음 상승) 바뀌어 지금의 ‘마누라’가 되었다.
 
 
그럼 ‘마누라’를 대신할 만한 호칭이 뭐가 있을까? 요즘 사람들은 ‘와이프(wife)’나 ‘처(妻)’라고 잘 표현하나 우리말 ‘집사람’이나 ‘아내’ 정도가 더 좋겠다. 그런데 우리는 ‘집사람’이라는 호칭이 ‘마누라’처럼 낮잡아 이르는 말로 들리지 않는데, 외국인의 경우 ‘집사람’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러시아 사람이 “내가 집이나 지키는 개야?” 하면서 화를 내서 놀란 적이 있었다. ‘집사람’이라는 표현이 ‘house wife’가 아니라 ‘house keeper’로 들린다는 것이다. 그러면 남은 호칭은 ‘아내’밖에 없다.
 

아내는 15세기에 ‘안ᄒᆡ’ 또는 ‘안해’로 쓰였다가 지금의 ‘아내’가 되었다. 실제로 우리 할아버지 세대에서 연애편지를 보면 ‘안해’라고 지칭했다. 가수 김백희(1948년)는 ‘안해의 노래’를 발표하기도 해 20세기까지 ‘안해’라는 호칭을 널리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안(內)’과 ‘해/ᄒᆡ(日)’를 결합한 합성어가 지금의 단일어가 됐으니 그 호칭이 아내를 얼마나 귀하게 여겼는지를 가늠하게 한다. 그래서 ‘안해’에 접미사‘-님’까지 붙여 더 높이려고까지 했다.


이제 ‘집안의 해’와 같은 아내를 바라보며 의미도 좋고 발음도 좋은 예쁜 우리말 ‘우리 아내’라고 불러 보자. 
 
김나영 중원대학교 주임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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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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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시리즈 20/10/16 [23:28]
'집 안에 있으라'고 '아내'라고 지어진 줄 알았는데 '집 안의 해'라니 놀랍네요.
아내는 높임말이었군요. ㅎㅎ 바로 잡게 해주어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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