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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글씨로 새롭게 조명한 나옹화상의 이타행 정신

제3차 나옹화상 탄신 700주년 사농 전기중 서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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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광용
기사입력 2020-11-10

*오는 13일부터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제3차 나옹화상 탄신 700주년 사농 전기중 서예전을 앞두고 여주 출신 소설가 엄광용 선생의 글을 보내왔기에 그대로 싣습니다. <편집자주>

▲ 소설가 엄광용   
흰 여백 위에 먹물이 스며들면서 글자의 형상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붓끝은 항상 손의 움직임에 따라 글자의 획을 만드는데, 그 여백의 미와 검은 획의 조합이 만드는 의미망(意味網)은 새로운 예술세계를 조명해 낸다. 

2020년 11월 13일부터 19일까지 일주일 동안 사농(絲農) 전기중(田琦重) 서예가의 나옹화상 탄신 700주년 기념 서예전이 경기도 여주시 신륵사 근처에서 열린다. 이 전시회에 출품된 70여 편의 서예작품들에는 11년간 정성을 다해 씨줄과 날줄로 엮은 두 사람의 숨소리가 글씨의 획과 획, 문장의 의미와 의미 사이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나옹은 1320년 1월 15일에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에서 태어났다. 사농은 나옹화상의  탄신 700년 기념으로 음력 정월 대보름을 하루 앞둔 2020년 2월 7일부터 15일까지 창수면사무소에서 제1차 전시회를 열었다. 평소 사농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주변의 인사들이 진행 자금을 보시해준 덕분이었다. 원래 기획은 전국 순회 전시회까지 생각하고 있었으나, 코로나19 파동으로 인해 무산되고 말았다. 

이때 사농은 계획을 바꾸어 전국 순회는 하지 못하더라도 나옹과 깊은 관련이 있는 장소를 택해 소규모로나마 전시회를 여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나옹의 낙발처(落髮處: 출가한 곳)인 경상북도 문경시 묘적암에서 제2차 전시회를 가졌다. 그리고 이번에 제3차로 시적처(示寂處: 입적한 곳)인 신륵사의 의미를 되새기는 뜻에서, 그 입구의 신륵사길 29길 이구굴(離求窟)에서 전시회를 열게 되었다.

▲  ‘나옹화상 탄신 700주년 기념 사농 전기중 서예전’  전시 작품 중 일부.     ©전기중 제공

사농이 이 전시회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여 쓴 것은 가로 1,500센티미터, 세로 40센티미터의 나옹 행장(行狀)이다. 이 글은 성철 스님이 번역한 《나옹록(懶翁錄)》에 나오데, 신륵사에서 나옹이 시적한 직후 상좌 각굉(覺宏)이 꼼꼼하게 스승의 일생을 기록한 내용이다. 이처럼 긴 스님의 행장 기록을 서예작품으로 선보인 것은  최초의 일로, 사농은 꼬박 3일 밤낮 동안 쪽잠을 자면서 오직 기도하는 마음으로 붓을 달려 완성을 보았다고 한다. 이 행장을 대하게 되면 심혈을 기울인 작가의 열정과 노력이 절간의 범종 소리를 들을 때처럼 사람들의 심금을 은은하게 울려주는 묘미가 있다. 행장을 붓글씨로 쓴 두루마리가 그만큼 길고도 긴 여운을 남긴다. 

고려 말 공민왕의 왕사이기도 했던 나옹은 여말선초(麗末鮮初)의 정치적 혼란기에 ‘탐욕스럽게 살지 말라’는 ‘이타행(利他行)’을 주장하고 몸소 실천한 고승이다. ‘초출삼계(超出三界) 이익중생(利益衆生)’, 즉 ‘모든 것을 버리고 오로지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 출가를 결심한 나옹의 원력행(願力行)에 발심(發心)하여, 사농은 오랜 세월 《나옹록》의 탐독하고 명구를 가려낸 끝에 잠심몰두(潛心沒頭)하여 서예작품을 완성하였다. 그 중 나옹의 모기를 주제로 쓴 시인 ‘문자(蚊子)’라는 작품은 사농이 특히 추천하는 칠언절구다.
 
‘不知氣力元來少(부지기력원래소)/제 힘이 원래 약한 줄을 모르고
喫血多多不自飛(끽혈다다부자비)/피를 너무 많이 먹어 날지를 못하네
勸汝莫貪他重物(권여막탐타중물)/부디 남의 중한 물건 탐내지 말라
他年必有却還時(타년필유각환시)/뒷날에 반드시 돌려줄 때 있으리라’
 
갈대와 억새가 한창 여강(驪江)의 만추(晩秋)를 갈색으로 물들이고 있는 이때에, 많은 사람들이 신륵사길29 이구굴(離求窟)을 찾아 나옹의 이타행 정신을 붓글씨로 재현한 농익은 사농의 예술세계를 접해보는 것도 마지막 알찬 가을걷이가 될 것이다. 마음의 여백에 정신의 쌀가마를 한 아름 들여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글/엄광용(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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