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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나누어 함께 하는 사회를

세종 생생[거듭살이]의 삶 - 생각의 정치를 편 ‘세종의 길’[行道] 함께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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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옥
기사입력 2020-11-30

▲ 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
세종의 마음을 통한 생생의 정치를 살피고 있다. ‘코로나19’ 상태에서 사람의 직접 접촉이나 외출이 줄어들고 집에 있는 일이 많아 상대방과 전화나 인터넷으로 접촉하는 일이 늘어나다 보니 사람 사이에 주고받는 말에서 마음 나누기가 또 하나의 과제가 되어간다.
 
공감(共感)이 필요한 사회

‘코로나19’라는 대 유행병이 닥치며 인류는 커다란 시련을 겪고 있고 사회는 여러 분야에서 변화되고 있다. 우리의 일상은 물론 각종 사회 시스템과 산업도 동시에 변하고 있다. 비대면 사회를 위한 대안이 그 예다. 해외로 가는 길은 막히고 출근이나 등교 등 반복적 일상마저 바뀌어 원격 교육과 근무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사람 사이의 직접적 접촉을 피하며 간접적인 일상을 유지하는 일이 대안이 되었다. 집에서 업무를 보고, 화상 회의를 열고,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는 수준이 새로운 일상이지만 여기에 XR(확장현실) 기술이 합쳐지면 비대면 사회는 보다 자연스러워진다. 또 AI(인공지능) 기술이 고도화 ·보편화 되면 비대면 대안은 ‘평등 사회’ 구축에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지만 비용 및 시간, 정보 격차로 접근이 힘들었던 서비스를 IT 환경에서 누구나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여기서 인터넷의 상태에 따라 국가나 개인별로 교육 기회도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당장은 일자리의 변형으로 상위에 있는 사람은 그 수입이 늘어나고 하위에 있는 사람은 수입이 더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다. 변화되는 사회에 새로운 격차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대안은 무엇인가. 이런 때에 강조하는 것이 있다. 혁신의 분위기는 살려 나가되 일방적 가벼운 위로나 동정이 아니라 모두의 근본적인 공감(共感)을 통한 유대 혹은 연대(連帶)라는 것이다.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계속 추구해야 할 길이다.

여기서는 공감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보자. 공감이란 합리적인 이성의 힘이나 판단으로 결정은 하되 이를 받아드리는 몸과 마음의 총체로서의 감성인데 코로나 시대에 이와 연관해 특히 주목받는 직업이 있다. 바로 인터넷이나 여러 가지 상담소 등에서 전화를 주고받는 일을 담당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을 감정노동자라고 하는데 이들은 더욱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다. 소위 콜 센터라는 곳이 그중 하나다. 그들은 상담 전화로 수많은 삶과 접속하며 때때로 언어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거기에 집단으로 종일 말을 하면 침을 튀길 수밖에 없게 되다보니 코로나에 더 쉽게 감염되고 전파하는 조건 속에 있기도 하다.
 
감정노동이란 실제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는 무관하게 직무를 행해야 하는 감정적 노동을 말하고, 이러한 직종 종사자를 감정노동 종사자라고 한다. 고용노동부는 감정을 관리해야하는 활동이 직무의 50%를 넘을 경우 감정노동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은행원, 승무원, 전화상담원이 대표적이다.

통계를 보면 콜 센터, 정부기관 등에서 일하는 감정노동자 2,795 명을 설문한 결과 여성 응답자의 61.7%, 남성 응답자의 56.8%는 여전히 감정노동으로 인해 심리적 지지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2020.11. 부산노동권익센터)

한마디로 보이지 않는 사람에 대한 사회적 예의차원에서도 사회적 공감 능력이 결여 되어 있는 것이다. 
한걸음 나아가 일상생활에서는 코로나 사태에 자신과 남을 보호하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거리 두기를 해야 하는 기본적인 사회적 규칙조차 지키지 않으면 벌금을 물게 하는 법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게 현실이다. 조금 빗나간 이야기이지만 유럽 일부에서는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겠다는 데모를 펼치니 개인의 자유를 위해 몇 백 년 싸워 온 유럽의 전통은 이해가 가지만 뒤돌아서면 감염되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데 자유를 목숨과 바꾸자는 생각은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 (그만큼 역사적 문화의 힘이 강하다고 보인다.)

수평적 민주시대에 공감이 필요한 현대와 아직 수직 구조 속에 있었던 세종의 중세를 비교하는 어려움은 있으나 그렇다 하더라도 중세에 모든 통치자가 백성을 위해 선정을 베푼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종 시대에는 조금 다른 면이 보인다. 백성에 대한  ‘공감 능력’이  ‘민연’으로 나타나고 있다.
 
민연(憫憐) 사상으로 대동 사회를

성위민련(誠爲憫憐) : (수감된 죄수가 얼고 굶주려 죽는 일이 없도록 명하다.) 형조에 전지하기를, “경중(京中)과 외방에서 옥을 맡은 관리가, 무릇 중한 죄로 체포한 사람은 정리의 가볍고 중함을 분간하지 아니하고, 비록 사유(赦宥)를 지날지라도 모두 가두어 두고 원범인(元犯人)의 죄가 판결되기를 기다리므로, 혹 병들고 얼[凍]고 굶주리며, 인하여 목숨이 끊어지는 데에 이르니 진실로 딱하고 가엾다. 이제부터는 무릇 사연(辭連)된 사람은 반드시 경중을 분간하여 보방(保放)하였다가 원범인의 일이 끝나기를 기다려서 일시에 죄를 판결하고, 함께 가두지 말도록 하여 항식(恒式)으로 삼게 하라 .”하였다. (以致隕命, 誠爲憫憐。... 以爲恒式。) (《세종실록》19/4/30)
 
형옥에 갇힌 사람들에 대한 예여서 조금 비유가 적당하지 않지만 비록 죄인에 대해서라도 민연(동감하고 측은하게 여기는 공감능력)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죄인을 생각하고 그들을 죽이지 않고 살려내는 실천으로 경중을 가려 보호 석방하였다가 일시에 죄를 판결하고 가두지 말도록 하는 법을 앞으로도 계속 실시[이위항식]하라고 전지를 내린다. 죄인에게까지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세종의 이 ‘민연’의 말씀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훈민정음 창제 때 나온다. 잘 아는 이야기지만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우매한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 이를 딱하게 여기어 새로 28자(字)를 만들었으니, 사람들로 하여금 쉬 익히어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할 뿐이다.’”(予爲此憫然, 新制二十八字, 欲使人(昜)〔易〕習, 便於日用耳.) (《세종실록》28/9/29)
 
근본적인 공감과 대안으로서 자칫 목숨과 관련한 억울한 사정을 말할 수 있는 표현의 도구인 문자를 백성에게 쥐어준 것이다. 마지막은 유대와 연대를 통한 공영(共榮) 인데 조선 시대에는 이를 대동(大同)으로 부르고 있었다.
 
대동(大同)의 노래 : (용비어천가, 여민락, 치화평, 취풍형 등을 공사간 연향에 모두 통용케 하다.) “시나 노래를 제작하는 것은 다 앞선 임금들의 융성한 덕과 신성한 공을 칭송하고 찬양하기 위한 것이매 , 온 나라의 사람들로 하여금 노래하고 읊조리고 소리치고 외어서 사모하는 마음을 일어나게 하여야 하옵나니, … ‘대동(大同)’은 제9변인데, 조종(祖宗)들이 대대로 문덕(文德)이 있어 제작이 밝게 갖추어서, 태평이 융성하게 열리리라는 것이니, 우리 조종들께서 천명을 받으심이 이미 넓고 크시도다. … 자리를 기울이어 어진 이들을 구하여서 문덕 숭상하고 유술(儒術)을 중히 여기매, 미려함을 정하여  좋은 교육을 시행하니, 정치와 교화가 흡족하게 펴이도다. 예의와 음악이 극진히 제작되매 빛난 문화가 융창하게 열리니, 자손만대 위한 일 장할 사 길이 빛나오리.” (《세종실록》29/6/4)
 
〈용비어천가〉, 〈여민락〉, 〈치화평〉, 〈취풍형〉이 한자리에서 어우러지고 임금과 신료, 백성이 한 자리에 모여 그때 시와 노래와 음악과 춤이 한데 어울리는 모습을 통해 나라 안의 임금과 백성이 ‘융평(隆平)의 사회’를 기리는 것이다. 어렵던 시대에 태평성대를 노래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지만 그런 사회를 지향하는 노래인 것이다. 요즘 ‘통합사회’를 외치는 구호 또한 세종 시대의 ‘대동 사회’를 그리는 것과 유사한 면이 있었던 것이다.

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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